프랑스에 도착해서 자가 격리에 들어간 지 33일 만에 우리 세 가족은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처가에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장 보거나 하는 등의 일은 장인, 장모, 처제가 돌아가면서 드라이빙 스루로 물건을 픽업해왔고, 아내와 난 처가 식구들의 도움으로 재택근무를 이어가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벌써 한 달이 지나버렸는데, 늘 식구들이 잘 챙겨주고, 두두도 잘 돌봐줘서, 큰 걱정없이 우리는 일과 삶을 한 곳에서 병행하면서도 크게 스트레스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달 넘게 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우리가, 오늘은 아침부터 나갈 채비를 하느라 바빳다. 약속시간 10시. 모처럼 밖에 나가는 것이지만, 아내는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왜냐면 오늘은 두두 백신 맞으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두두가 주사를 맞고 울 때마다, 마음 약한 아내는 같이 울먹거리고 있다. 그래서 두두가 주사 맞을 때는 지금껏 내가 안은 채로 진행했다. 오늘 맞을 백신은 Le vaccin ROR이라고 하는, 홍역, 풍진, 유행성 이하선염 복합 백신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MMR이라고 한다. 12개월이 지난 아기가 맞는 백신인데, 2번 맞아야 하는데 오늘이 1차로 접종 하는 날이었다. 아내가 우리 셋의 신분증과 외출 허가증, 아기 수첩과 갈아입힐 귀저기, 마스크, 소독용 티슈 등을 챙기는 동안, 나는 차에 베이비 시트를 설치했다.
아래는 질본에서 배포한 2020 표준 예방 접종 일정표인데, 막상 표를 보니 맞아야 될 것이 엄청 많다 ^^;; 나 어릴 때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나는 아기 수첩 그런 것도 없어서, 맞았는지 안맞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표준을 세워놓고 잘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프랑스 내에서도 작은 시골 마을이기때문에 큰병원은 없지만 일종의 클리닉 같은 곳이 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보통 대기실 하나 / 진료실 하나로 구성 되어 있다.한국의 병원이나 의료 시설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여기선 보통 클리닉에서 다 해결한다. 약도 처방이 되고. 수술 아니면 클리닉에서 대부분 처리가 된다. 한번 상담하고 체크하는 비용이 보통 30~35유로 정도 한다. 꽤 비싼데, 보험이 있으면 나중에 전액 re-fund 받을 수 있다.
클리닉에 도착하고 의사를 대면하자, 두두도 무언가를 감지한 듯 하다. 유난히도 보채고 울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팠다. 괜찮다고 아무리 타일러줘도, 패닉이 온 듯했다. 결국 오늘은 아내가 두두를 안고 진정시킨 뒤, 주사를 맞는 동안에도 꼭 안고 있었다. 그동안은 멋모르고 구경하다가 따끔할 때 울고 말았는데, 이제 점점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이해한 것 같다. 앞으로 어떨지 잠시 상상이 되었다. ㅠㅠ
모처럼 나오긴 했지만, 아직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게 하고, 그대로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왔다. 집으로 와서 대신 조용한 집 앞의 도로에 산책 하러 나갔다. 비가 내린 뒤라 공기는 촉촉했고, 달팽이를 가지고 놀던 두두는 어느새 유모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많이 울어서 피곤했는지, 약기운 때문인지 이 날은 낮잠을 3시간 스트레이트로 잤다.
그동안 나는 엄빠에게 영통을 했다. 어버이 날이나 생일이 오면 늘 미안해졌는데, 그냥 그 평범한 것. 옆에 있는 것. 같이 저녁 먹는 것을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매번 선물, 용돈 같은 걸로 대신한다, 올해도 여느 때와 같이. 그렇게 걱정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말했다. "두두는 언제 커서 니한테 고맙다고 얘기하겠노? ㅎㅎ".. 그렇다... 생각해보니.. 나도 아빠다!! ^^ 잠시 잊고 있었는데.. 사실은 이번이 두 번째 맞는 어버이날인데,, 어버이의 날이 나의 날이기도 하다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ㅋㅋ
두두와 나의 어린 시절이,, 나와 엄마아빠의 젊은 시절이.. 오버랩이 되었다. '그렇구나 엄마 아빠와 나도 이럴 때가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위대하다고 했는데, 나한테 위대랑은 거리가 멀지만,, 자식 키우느라 고생을 안해본 부모는 없다는데 백번 천 번 공감한다. 우리 부부가 두두와 함께하면서 겪는 즐거움, 슬픔, 행복, 스트레스, 웃음, 피곤함 이 모든 것들은 엄마 아빠가 나와 함께 겪은 과정이라는 것도 인지하게 된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두두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지금의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두두에게도 그런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두두에게 어떤 아빠 일까? 등등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나는 멋진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막연하게 그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치 갑자기 생긴 바램처럼. 앞으로 멋있어 지려먼 어떻게 해야 될지 조금 더 고민해볼 문제이나,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어야겠다는데 동의했다. 슬슬 루틴 해지고 있던 내 삶에 다시 한번 강한 불씨가 생긴 것 같다. 나의 날이기도 한 어버이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