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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관찰 일지 - 우리가 새끼 비둘기를 볼 수 없는 이유

지난여름의 일인데,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뜻밖의 손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한 달여 만에 오게 된 집을 청소하기 위해 창문의 커튼을 모두 열어젖히고 있을 때, 첫째 아이의 방 창문 난간에 이미 둥지를 틀고 있는 녀석과 마주했다.

 

난간에 둥지를 튼 비둘기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닭둘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말 육중한 몸집의 초거대 닭둘기가 나를 보자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뒤로 커튼을 걷을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뭔가 있음을 직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새끼를 품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새끼 비둘기를 보기 힘든 이유

길거리를 걷다보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녀석이 비둘기인데 정작 새끼 비둘기는 본 기억이 없다. 실제로 새끼 비둘기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가 먼저 비둘기는 다른 새들처럼 나무 위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고 한다. 주로 다리나 빌딩 턱 같은 구조물에 집 짓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래서.. 네가 여기에..) 더욱 보기가 힘들다.

 

두 번째로 새끼 비둘기는 태어나서 한 달 정도면 둥지를 뜨는데, 그때는 이미 어미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성장을 해버린다. 그래서 길에서 보는 비둘기 중 어떤 녀석이 어른이고, 어떤 녀석이 한 달이 갖 넘은 새끼 비둘기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이다.

 

비둘기 관찰 일지

완전히 코너에다가 벽과 화분 사이에서 제대로 은,엄폐가 가능하며 햇빛과 비바람을 정통으로 맞지 않는 곳. 다시 한번 어미 비둘기의 자리 선점 능력에 감탄했다.

 

어쨌든 이렇게 정말 뜬금없이 새끼 비둘기의 관찰 일지가 시작되었는데, 매일 보는 와중에도 그 무지막지한 성장 속도가 느껴질 만큼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새끼 비둘기

 

하얀 솜털과 잔뜩 웅크린 모습에 측은해서 남은 빵조각을 던져줬는데, (프랑스에 사는 비둘기니까 빵도 잘 먹으리라 판단..) 크게 관심은 없어 보인다.

 

그 이후론 괜히 겁만 주는 것 같아서 커튼도 슬쩍 열고 호다닥 사진만 찍고 다시 커튼을 쳐버렸다. 이날 이후로 우리는 아이 방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새끼 비둘기

 

처음에는 어미 비둘기가 늘 같이 있었는데, 한 3-4일 이후로는 거의 어미는 먹을 것만 물어다 주고 더이상 둥지를 지키지는 않는 것 같았다. 호들갑쩌는(?) 집주인 때문에 어미가 새끼들을 버리고 가버린 것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으나..

 

새끼 비둘기

 

그것은 과도한 우려였다. 이내 눈에 띄게 몸집이 커지고, 솜털이 깃털로 바뀌어 가는 걸 보면서 엄마 비둘기가 아직까지 잘 챙겨주고 있음을 짐작케했다.

 

새끼 비둘기

 

얼마나 잘 먹고 있는지는 무지막지하게 싸지르는 똥만 봐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새끼 비둘기

 

어찌 되었든 우리 집에서 잘 크다 못해 폭풍 성장을 하고 있는 새끼 비둘기들을 보니 흐뭇하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끼 비둘기

 

무지막지하게 싸 대는 똥 때문에 창가의 난간은 비둘기 배설물로 가득했으며, 창문을 닫아 놓기는 했지만 바람을 타고 이 퀴퀴한 냄새가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끼 비둘기

 

누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했나? 내가 봤을 때 너희는 똥의 상징이고 민폐의 상징이다. 무단으로 창가를 점거한 것도 모자라서, 나에게 보란 듯이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는 요 깜찍한 녀석들 때문에, 그래도 '잘 크니까 다행..'이라는 마음과 '아 신발.. 저걸 어케 다 치우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새끼(?) 비둘기

 

10일 정도 됐을 무렵엔,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몸집은 첫날보다 거의 2배 정도로 커졌고, 깃털도 제법 비둘기 모양새가 나오는 모습이다. 그냥 빨리 커버려서 그만 싸고 떠나던지,, 아니면 좀만 먹고 좀만 싸든지.. 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리 없다.

 

새끼 비둘기

 

새끼 비둘기들이 좀 커지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다른 문제는 바로 비둘기 울음소리. 9999999999 99999999999.... 두 마리가 돌아가면서 구구 구구- 거리는데, 거실에 나와 있어도 얘네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새끼 비둘기

 

관찰 일지를 마치며

네가 힘든 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 먹고 싸는데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우리의 새끼(?) 비둘기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새끼 비둘기들과의 조우 2주 차가 되었을 무렵 집을 떠났다.

 

비둘기들이 있는 난간만 빼고, 모든 집을 청소 한 뒤 우리는 런던으로 이사했는데. 그 뒤 처제가 집을 방문했을 때 비둘기는 떠나고 없었다고 했다. 배설물로 가득 찬 둥지와 난간만 있을 뿐...

 

매번 궂은일도 웃으며 처리해주는 처제도 이번 난간 청소는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처제가 갖고 싶어 하던 것을 사주는 선에서 대충 딜이 이루어지고,, 어찌 되었든 지금은 난간도 깨끗해져서 그럭저럭 세입자를 맞이할 준비를 해둔 상태다.

 

새끼 비둘기들이 훨훨 날아 둥지를 뜨는 것 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처제가 집을 방문했을 때가 이 녀석들을 본 날로부터 한 달 정도 되는 시점이었으므로, 인터넷 백과에서 얘기하는 것이 한달 정도면 둥지를 뜬다는 말이 대충 맞는 듯 보였다.

 

혹시나 자신의 집 베란다나 난간 어디든 비둘기 둥지를 보게 된다면, 상기에 언급한 이벤트들이 발생할 것을 알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바라면서 '비둘기 관찰 일지' 끝.

 

새끼 비둘기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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