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굿스토리

 

아침부터 키위 버스는 우리를 싣고 부지런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와이너리의 끝없는 포도밭이 눈 덮인 산 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 평온해 보이는 경치가 지나자, 이번에는 황량해 보이는 돌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잿빛의 돌산 아래로 돌산과 이상하게 어울리는 에메랄드 빛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옥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한 이 강 이름은 카와라우. 뉴질랜드 오타고 지방의 북서쪽을 흐르는 강이며, 세계에서 최초로 번지 점프가 시작된 장소. 우리는 카와라우 강(Kawarau River)에 와있었다. 

 

 

어제의 호수 투어가 힐링 캠프였다면, 오늘 투어는 어드벤처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손꼽아 기다렸던 어드벤처 중 하나였다. 키위 버스는 여행지로 안내하고 트래킹은 하지만 돈 들어가는 것은 순수 본인들의 선택이다. 당연히 우리는 하기로 했다. 세계 최초 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번지 점프 장소.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버스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 했을 때, 우리는 '번지 점프하러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에이제이 해킷(AJ HACKETT BUNGY)이라는 곳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에메랄드 빛 강으로부터 43m 높이에 위치한 다리가 보였고, 그 가운데에 번지 점프를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입구를 통과하자 특이한 실내 중앙에 리셉션이 자리 하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신청서를 작성하고, 체중계에 올라갔다. 무게에 따라 줄 길이를 조정하는 듯했다. 오른쪽 손등에는 점프 순서를, 왼쪽 손등에는 몸무게를 적힌 후, 우리는 다리로 이동했다. 동생들 앞에서 태연한 척했지만 긴장감은 더해갔다. 다리 위에서 점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날씨는 맑아지고 있었고, 다리 아래로는 푸른 옥빛의 강이 햇빛에 반짝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듯하다. 😅

사람들이 번지를 하면 강 아래에서 구조 보트가 대기하고 있다가, 사람들을 뭍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물에 닿는 사람, 몸 절반이 물속에 푹 들어갔다 오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겨울이긴 했지만 물속에 들어갔다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순서가 다가 올 수록 긴장감은 더해져 갔다. 겁이나기도 했지만, 재밌을 것 같아 얼른 차례가 왔으면 했다. 순서를 기다리며 긴장감이 계속 상승하는 것보다 빨리 뛰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 번호가 먼저 불렸다. ㅎ 안전 요원들이 다시 한번 줄을 체크 하고, 동생은 점프대의 끝자락에 섰다. "잘 가라~ 그동안 즐거웠다"와 같은 시답잖은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보려 했으나, 한걸음 내딛으면 그대로 43m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내 동생은 제정신 일리가 만무했다. ㅋㅋ 번지 사인이 떨어지자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와악~"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동생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 뒤 동생은 구조 보트에 실려 무사히 육지로 올라왔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떨어지는 순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상상해보는데 내 번호가 불렸다. 이때부터 아드레날린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바닥에선 땀이 났다. 발목에 감긴 생명줄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나는 점프대 끝에 섰다. '아,, 네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방금 뛰어내린 동생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해가 갔다. 안전 요원의 지시에 따라 점프대 한쪽에 부착된 카메라에 인사를 하고, 리셉션 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전망대에는 투어 식구들이 파이팅 하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곧이어, 안전 요원이 "you're ready?" 하고 물었다. 나는 "yes"라고 짧게 대답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이제는 뛰어내릴 시간이었다. 어떤 포즈로 뛸지 수없이 상상을 해왔으나, 다 필요 없었다. 그냥 뛰기로 했다. "OK GO!"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점프했다. 그리고 날았다.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와 아아아아 아~~"가 거의 끝나가는데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다. 겁이 났지만 발목에 느껴지는 안전줄의 묵직함에 금방 안정을 찾았다. 남들 뛰는 거 볼땐 금방이었는데, 직접 뛰어보니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 날고 있다고 느꼈다. 43m 높이에서 무중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껏 내가 초능력이 생긴다면 가장 가지고 싶었던 능력, 날아다니는 꿈에 근접해 있었다. 하늘을 나는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너무 빨라 제어가 안돼서 어디엔가 부딪히면서 잠에서 깨곤 했는데, 바로 그때의 느낌이었다. '슈우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으며, 옥빛의 강물은 내 눈 바로 앞에 까지 왔다가 멀어졌다. 몇 번 왔다 갔다 반복하다가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나는 강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차가운 걸 보니, 저승은 아닌 거 같았다. 노란 구조 보트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짜릿함과 떨어질 때의 그 흥분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용감한 형제라며 사람들이 박수 쳐주었다. 👏🏻👏🏻👏🏻 우리는 승리(?)를 만끽하며, 리셉션에서 보여주는 점프 할 때의 사진들을 구경했다. 사진을 이메일로 받기 위해서는 추가 요금을 내야 했지만.. 다행히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들도 꽤 좋은 장면들이 많았다.

 

 

사진들을 돌려 보며 전망대로 갔을 때, 투어 멤버 중 한 명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점프대에 올라섰다가 뒤로 물러나고, 올라섰다가 뒤로 물러나고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가로저으며 그녀는 울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포기하지 말라며 괜찮다고 계속 박수를 치고 이름을 불러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중에는 전망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응원했다. 마침내 그녀가 점프를 했을 때, 우리는 전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같이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도 보였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저기에 서봤던 나는 안다. 자신만만했던 나도 막상 올라섰을 때는 겁이 났던 곳. 살짝만 움직여도 43m 아래로 떨어지는 위치. 저 좁은 곳,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간다. 두려움과 공포, 포기하고 싶음, 스트레스, 압박감 이 모든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데, 처음에 무너지면 전세를 역전시키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어내리는 그녀의 용기가  지켜보던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 친구 덕분에 우리는 가장 먼저 시작해 가장 늦게 떠나게 되었지만, 그녀가 버스에 올랐을 때 우리는 한 번 더 크게 환호해주었다. 🙌🏻 오늘은 우리 모두가 챔피언인 날이다. 😊

 

0123456789

 

2020/04/29 - [나의 여행] - 뉴질랜드 - 거울 같은 마테존 호수와 와나카 호수 여행기

2020/04/21 - [나의 여행] - 뉴질랜드 - 빙하 트래킹, 프란츠 조셉 빙하(Franz Josef Glacier) 탐방기

2020/04/19 - [나의 여행] - 뉴질랜드 - 반지의 제왕 & 호빗 촬영지 호빗 마을(Hobbiton)을 가다

2020/04/17 - [나의 여행] - 뉴질랜드 - Hot water beach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