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 주 일요일이었던 어제는 프랑스에서는 아빠의 날이었다. 이 날은 지나가는 멍멍이도 쉰다는 프랑스의 일요일이었지만, 나는 나혼자 워커홀릭이신 분을 따라 아침부터 트러플 농장으로 출발 준비를 했다. 얼마 전 타이어가 터질 것처럼 나무를 싣고 온 뒤, 진짜로 타이어가 터져버려서 얼마 전 새 타이어로 교체했는데, 수레를 보며 한껏 상기된 표정을 보니 얼마나 많이 실으려고 하는지 출발 전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한국에서 받아온 국제면허증의 기한이 다되어서, 사용 가능한 면허증이 없던 나는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뒤따랐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다리도 다리지만 예리하게 만들어진 안장덕분에 엉덩이가 매우 아파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했다ㅠ
다행스럽게도 산이 없어서 내려서 끌고 올라가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으나, 어렵사리 트러플 농장에 도착하자 다리가 후들거리며 나에게 '일욜 아침부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부들부들 거린다. 조금 쉬고 싶었지만 장인어른은 이미 스타트를 끊어서,, 물만 한 모금 하고 바로 나무를 나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오며 워밍업은 이미 다 되어있었고, 오늘은 날씨마저 화창해서 나무를 옮기기 시작하자 땀이 한바가지 쏟아진다.그렇게 또 열심히 나무를 쌓다 보니 금새 수레가 꽉 찼다.
이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돌아갈 시간. 오늘은 주인을 잘못 만난 팔과 다리에게 반드시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앞서가는 수레 꽁무니를 쫓았다. 헥헥 거리며 오르막을 넘고 커브길을 돌고 나니 저 앞에 장인이 서있다. 친절하게 나를 기다려줄 리 만무한데 트랙터를 도로 바깥쪽에 세우고 내렸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짐작케 했다.
내려서 보니, 새로 끼운 타이어의 한쪽이 구조물에 닿아서 가는 도중에 바퀴가 걸려버렸다고 했다. 다행히 이상한 소리와 낌새를 채고, 급하게 도로 밖으로 트랙터를 세웠기 망정이지하마터면 수레가 옆으로 쓰러지면서 완전히 전복되는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트랙터에는 타이어를 다시 고정할 만한 공구가 없어, 집에서 있던 아내가 차를 가져왔고, 그 차로 다시 공구와 리프팅 잭을 실어왔다.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타이어 직접 교체는 프랑스 와서만 두 번째다. 우리나라가 참 살기 편한 나라인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나무를 가득 실은 수레를 리프팅 잭으로 들어 올린 뒤, 타이어를 완전히 분리시켰다가 다시 끼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작업이 잘 되었는지 집까지 무사히 귀환했는데, 수레 위의 나무는 밥부터 먹고 옮기기로 했다.
아빠의 날도 기념일이라면 기념일인지라 샴페인이 등장했다. 우리는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점심을 먹기 전 샴페인으로 서로를 축하했다. 장인어른은 아빠의 날 선물로 '에어컴프레셔'를 선물로 받았고, 나는 '질레트 스타일러' 면도기를 선물 받았는데, 두두는 이걸 가지고 바닥에 끌고 다니면서 자동차 놀이를 했다. ㅎ
배도 부르고, 샤워도 하고 나오니 아까 마셨던 샴페인과 와인때문인지 몸이 너무너무 나른 해져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났더니 저번 엄마의 날 때처럼 나가서 산책을 하자고 해서 비몽사몽인채로 차에 올랐다. 지인의 텃밭(?) 이랬는데, 가는 길에 소와 말을 볼 수 있다고 했다. 20분 정도 거리의 다른 마을에 도착했는데, 숲길로 들어서자 지인분이 나와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심어 놓은 콩이나 호박 따위를 구경했다. 그러다 우리는 멀리 있는 엄~청 큰 나무에 온 시선이 빼겼는데, 200년은 넘었을 거라는 이 나무는 주위의 어떤 나무 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해보이기 까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히히히잉~~~' 하면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어디 있다 나타났는지 말 세 마리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두두는 갑자기 나는 소리에 놀랐는지 내 목을 꼭 끌어안았는데, 말들이 우리 앞에서 멈추자 천천히 긴장을 풀더니 이내 말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파리들 때문에 눈이 감염되어 그렇다고 설명해주었다. 이마에 하얀 점이 매력적인 검은 말은 마스크가 없어 계속 들러붙는 파리 떼를 쫓느라 힘겨워 보였다. 눈 주위로 계속해서 들러붙는 파리들은 정말로 파리채로 다 잡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서 지내면서 평생 볼 말을 다보는 것 같은데, 말은 참 볼때마다 멋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군살하나 없는 근육질의 몸은 강하면서도 그 전체적인 선이 아름답고, 터프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등에 태우고는 아주 정갈하게 '또각또각' 걷는 모습은 언제봐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말을 키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피키블라인더스'의 토마스 쉘비가 떠올랐다.
한동안 말들과 시간을 보내다 우리는 근처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 지역의 돌로 외벽을 만들어 놓은 집들이 마치 중세 시대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따로 사진을 찍어 두지 못해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 농장의 소들을 볼 수 있었지만 두두는 피곤했는지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잠들어 버려서, 그대로 지나쳐서 집으로 왔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저녁을 맞이하면서 무지막지하게 길었던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아빠의 날도 지나갔다. 내 생의 두 번째 아빠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