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굿스토리

 

2021 광복절에 봉환되는 홍범도 장군. 그의 파란만장한 삶.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번 광복절에 이역만리 타국에서 봉환될 예정인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자 독립운동가이신 홍범도 장군에 대해 알아보고, 마침내 고국으로 봉환될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해 정리해봅니다.

 

홍범도 장군(1868~1943)

 

청와대는 2021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 크즈올르다에서 모셔올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8월 15일 저녁 고국에 도착하여, 16-17일 국민추모기간을 거친 뒤 18일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여러 차례 추진 되었던 사업이었습니다만, 코로나 확산 등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하다가, 지난 6월 문대통령이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지만, 정부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올 것이다.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라고 약속했고, 올해 3.1절에는 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아들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고 하네요.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정의

1920년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킨 전투

 

봉오동 전투 삽화

 

역사적 배경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의 무장활동이 활발해지게 되자 일제는 1920년 5월 독자적인 조선 독립군 및 독립 투쟁 세력 소탕을 위한 작전을 펴게 되었고, 이때부터 만주에서도 독립군의 무장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일제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에 맞서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은 북간도 지역 독립군과 연합하여 대한 북로 독 군부를 결성. 만주 지린성 보 오동에 집결하게 되고, 이곳에서 일본군 추격대와 전투를 벌였다.

 

봉오동 전투의 작전과 결과

봉오동은 두만강에서 40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령의 험준한 산줄기가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장 수십 리를 뻗은 계곡 지대이다. 봉오동에는 100여 호의 민가가 흩어져 있었는데 독립군 근거지의 하나로서 최진동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민가는 상촌(북촌)·중촌(남촌)·하촌 등 3개 부락에 흩어져 있었으며, 상촌은 봉오동을 대표하는 곳으로 독립군의 훈련장이 있었다. 독립군은 6월 7일 아침부터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해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부대를 재편성하였다.

 

1·2·3·4중대 그리고 별도로 2개 중대를 두었다. 안무는 사령부 부관으로, 이원은 연대부 장교로, 최진동을 사령관으로, 홍범도를 연대장으로 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은 홍범도 장군이었다. 연대장 홍장 군은 직접 2개 중대를 인솔하고 서남산 중턱에 위치하여 일본군의 선봉이 봉오동 어구를 통과하도록 유도하도록 하였다. 일본군 주력 부대가 독립군이 잠복한 포위망에 들어설 즈음에 일제히 사격을 단행하도록 하였다.

 

일본군은 독립군의 작전계획대로 봉오동 상촌 독립군 700명이 잠복해 있는 포위망 가운데로 들어왔다. 홍범도 장군의 명령에 따라 동·서·북 3면에서 협공하니 일본군은 갈팡질팡하면서 쓰러졌다.

 

오후 3시 소좌 야스카와는 가미야(神谷) 중대와 나카니시(中西) 소대를 지휘하여 동쪽 고지에 매복한 강상모 중대를 향하여 반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강상모 중대는 이를 격퇴하여 100여 명을 사살하였다. 여기서 일본군은 온성 유원진(柔遠鎭)으로 패주 하였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의 전사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반면 아군은 장교 1명, 병졸 3명이 전사하고 약간의 부상자를 냈을 따름이다. 이 압도적인 전승의 원인은 독립군의 앙양된 사기와 지휘관의 예지, 지리적 요지를 선용한 뛰어난 작전계획에 있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

 

홍범도 장군은 왜 카자흐스탄에 잠들었나?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뒤 일본군의 대대적 토벌을 피해 1921년 연해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런데,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극동지역 침략이 본격화되자, 당시 소련은 한인들의 스파이 활동에 경계심을 품게 되었고, 6년 뒤, 소련 정부는 극동지역에서의 한인 강제추방을 결정하면서, 한인들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홍범도장군 묘 표지판

 

1937년 강제 이주 당시 홍장군도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얀꾸르간 시르다리야 강 건너편의 사나리크 셀소 비에트(카잘린스크 구역)에 도착하여, 이듬해 4월 즈즐오르다 도시구역인 크라스늬고로독으로 이사했다.



이주 후 병원 경비로 일하면서 알게 된 고려극장 관계자들이 월 50 루블의 수위장 자리를 만들어 줬고, 그렇게 다소나마 여유로운 말년을 보내던 홍범도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크즐오라디시 스테프나야거리 2번지에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하게 된다.

 

고려인들의 보살핌

홍범도 장군이 사망할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일 때라, 카자흐스탄 현지 고려인들은 급하게 홍 장군의 묘소를 일단 그의 생가 근처에 임시로 조성했다가, 그로부터 6년이나 지난 뒤 제대로 된 공동묘지에 안치했다.



고려인 인사들은 성금을 모아 분묘 주변에 철벽을 쌓고, 철로 만든 비도 세웠으며, 철비에는 장군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졌다.



"조선의 자유 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 빨치산 대장 홍범도의 일홈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 - 1951년 10월 25일 레닌 기치 신문사 동인, 고인의 전우 및 시내 유지한 조선인 일동 건립"

 

홍범도 장군 흉상



우여곡절 홍장군 봉환 스토리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려는 시도는 사실 북한에서 먼저 시작됐었다. 1993년 북한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 정부에 공식 요청했으나, 고려인 사회의 거부로 봉환은 성사되지 못했다. (YES!!!)



그즈음, 한국 정부도 조사단을 현지에 급파해 장군 묘소 조사에 착수하고, 카자흐스탄 정부 측과 유해 봉환을 위한 협의에 나섰다.



그러자, 북한이 평양방송을 통해 남측이 '사기 협작극'을 벌이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북측은 "홍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고, 후손들도 평양에 있기 때문에 유해는 평양으로 옮겨져야 한다"며 강력 반발하면서 26년 전 유해를 봉환하려던 한국 정부의 시도는 그렇게 좌절되는 듯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카심조마르트 대통령

 

그러다가 2017년 홍 장군의 유해 봉환 논의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 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추진을 지시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카 정상회담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늦어도 2020년까지는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하기를 희망한다"며 유해 봉환 의지를 명확히 전달했다.



이후, 외교부 담당 국장은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를 만날 때마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했고, 또 정부는 카자흐스탄 대통령 취임 축하 서한을 보낼 때도, 심지어 외교장관 생일 축하 서한에까지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한다는 내용을 담아서 보냈다고 한다.



이후 국방부까지 나서서, 2019년 9월 국방부 차관은 서울 안보대화에 참석한 카자흐스탄 총참모부 제1부 총참모장과 양자회담 시 유해 봉환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결국 2019년 12월 한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유해 봉환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실무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마침내 2020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며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공식 발표했고, 오는 15일 저녁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잠든 지 78년 만의 귀환이다.

 

마치며

광복절 자체의 의미도 매우 크지만 이번 광복절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독립운동가이자 전투 영웅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송환되는 날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홍범도 장군과 봉오동 전투, 타계 후 고려인들의 보살핌과 78년 만에 귀환길에 오른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서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몰랐던 많은 내용들을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고국의 품에서 편히 잠드시길..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3974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 http://www.hongbumdo.org/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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