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굿스토리

이번 주 월요일부터 이곳 프랑스는 강제 자가격리 조치가 해제되었다. 거주지에서 반경 100km까지는 통행증이 없어도 이동이 가능하며, 레스토랑과 바 그리고 영화관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제외하고는 다 원래로 돌아갔다. 지역과 회사에 따라 출근하는 곳도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미용실도 문을 열었다. 그렇긴 해도 여기 가족들처럼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돼서, 아직 밖으로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는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마트에서 준비된 물건을 픽업만 해왔는데, 물건이 몇 개 빠져있거나 해서 늘 불만이 있던 중,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격리조치를 풀자마자, 나의 친구이자 장인은 아침부터 차를 몰고 나가더니 점심때가 다돼서야 배추 두 포기와 다른 먹을 것들을 차 트렁크가 꽉 찰 정도로 실어 왔다. 그동안 계속 바빠서 못 만들었는데, 볼 때마다 김치 안 만들었냐고 김치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서, 하루 날 잡고 만들어야지 했는데 오늘이 걸렸다.

와이프도 좋아하고 처가 식구들 모두 김치 매니아들이라,,  전에 종종 겉절이 김치를 만들어 먹긴 했는데, 안 만든 지가 꽤 되었었다. 오늘 오랜만에 핸드폰 메모장의 엄마 레시피를 뒤적거렸다. 물론 모든 재료가 다 있지는 않지만, 2월 초순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되기 직전에 두두 돌잔치로 엄빠가 왔다갔는데, 그때 엄마가 싸들고 온 고춧가루랑 몇 가지 재료들이 있어 그걸로 일단 만들 수 있었다.

 

먼저 배추 썰기. 배추가 우리 나라 것처럼 크지가 않다. 저 배추 두 개 썰어야 우리나라 배추 하나 정도의 양이 나온다. 

길게 반 그리고 한 번 더 반으로 자른 뒤, 본인이 원하는 사이즈로 적당하게 자른다. 

자른 배추는 물에 담궈서 깨끗하게 씻는다. 아오 씻기고 헹구는 거만 해도 벌써 지치는 느낌.. 왜 나는 나중에 잘라볼 생각을 안 했을까 싶다. 다 씻고 물기를 좀 빼고 나면, 굵은소금을 치면서 배추를 절인다. 배추는 하얀고 딱딱한 배추가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절이면 된다. 보통 1시간 안쪽으로 두는데, 중간에 한번 뒤집어서 섞어주거나, 소금물을 다시 위에서부터 조금 부어준다.

양념장 만들기 :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동안, 양념장을 준비한다. 이 포인트가 후각적으로 조금 버티기 힘든 시간이다. 이것만 하면 누군가는 와서 이게 무슨 냄새냐고 꼭 물어본다 ㅋㅋ. 멸치액젓과, 찹쌀가루 그리고 물 한 컵을 끓인다. 멸치 액젓이 없어서 까나리 액젓을 넣었다. 꿩 대신 닭이다. 

조금 끓기 시작할때, 계속 저어주면 이렇게 약간 걸쭉하게 된다. 꼬릿 한 냄새는 여전히 나는데, 이때쯤 되면 불 끄고, 식혀준다.

다음으로, 고추 양념장이다. 원래는 마늘 6쪽에, 무, 생강,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하지만,, 없는 관계로 있는 걸로 대충 준비해본다.

고추장 양념의 베이스가 될 육수내기 인데, 엄마는 물 1컵과 멸치 액젓 1컵, 다시마, 양파, 파 무우를 넣고 10분 정도 끓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게  없다. 그래서 있는 거만 넣었다. 양파랑, 파 꼬다리. 이것만 끓여도 조금 달짝지근한 향과 맛이 느낄 수 있다.

생강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생강가루가 있어 그걸로 대체했다. 김치 먹다 보면 씹히는 생각의 알싸한 맛을 좋아했는데, 이번엔 어쩔 수가 없다.

다시 돌아와 보니, 어느새 배추가 풀이 많이 죽어있다. 하나 집어서 말랑말랑한지 살펴본다. 부러지지 않고 말랑거리는 걸로 봐서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그럼 이제, 다시 흐르는 물에 배추를 헹군다. 이때 잘 헹구고 물기를 잘 빼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김치 먹었을 때 엄청 짜다. 그래서 보통 두세 번은 헹구라고 엄마는 신신당부를 했다. 물기가 빠지게 놔두고, 이제 식혀둔 양념장들을 한데 모은다.

양념장 만들 재료들이 다 준비가 되면, 전부 섞어준다. 먼저 찹쌀가루 소스와 육수로 우려낸 국물을 섞는다. 전에는 정말 뻑뻑했는데, 육수랑 섞이니 양념장 베이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집에서 직접 키워서 말린 고춧가루. 봉지에 두 겹으로 꽁꽁 싸서 그걸 캐리어에 싣고 온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조금 뭉쳐있긴 했지만 상태가 너무 좋다. 전에 아워홈에서 파는 중국산 고춧가루를 써본 적이 있었는데, 밀봉된 상태였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색깔도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맛도 향도 별로여서, 이것도 변했음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너무 좋은 상태로 잘 있어 주었다. 고추 말릴 때 필요하다고 해서, 옥상에 미니 비닐하우스도 만들 주고 왔었는데, 만들고 온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국산 홈메이드 고추가루
국산 홈메이드 고추가루

이제는 양념장에 다 넣고 버무린다. 원래 이 정도 양이면 고춧가루도 2컵 넣어야 하지만, 한 컵 하고 한 숟갈 정도만 더 넣었다. 나도 매운 걸 못 먹고, 처가 식구들은 나보다 더 매운걸 못 먹는다. 아까 만들어 두었던 양파랑, 마늘 다진 것 그리고 생강가루를 뿌리고 섞어준다.

김치 양념장 만들기
김치 양념장 만들기

이제는 양념장을 씻어서 물기를 빼둔 배추에 붓고, 잘 섞어준다. 

맛을 봐가면서 양념을 조금씩 더 부어준다. 아직 배추와 양념이 입안에서 따로 놀기는 하지만, 양념 위주로 맛을 보고 설탕이랑 생강가루를 조금씩 추가했다.

골고루 잘 양념이랑 섞어준 다음, 랩을 씌워서 시원한 곳에 보관한다. 양념이 배추에 절여질 시간이 필요하다. 밖이 시원해서 야외 테이블에 두었다가 해가 뜨면서, 따뜻해져서 결국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4-5시간 정도 지난 뒤, 밥이랑 같이 먹으려고 열어보니, 비주얼을 봐줄 만한다. 

생각보다 너무 맵지 않게 되어서, 나한테는 조금 심심(?)하지만, 소금기도 잘 빠져서 짜지도 않고, 양념이 배추에 잘 스며들어 있어 나쁘지 않다. 식구들도 하나도 안 맵다는 거 보니, 고춧가루 두 컵을 다 안 넣길 잘한 것 같다. 몇 달 전부터 80% 채식을 하고 있는 아내의 여동생은 연신 "트로봉(trop bon)!"을 연발했다. 손과 시간 많이 가긴 했지만, 이래저래 당분간은 김치랑 같이 먹을 수 있게 돼서 기쁘다.

나는 해외에 살면서, 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워낙 매운걸 잘 못 먹는 데다가, 정말 조금만 매우면(한국 기준) 바로 온몸에 땀이 나고 딸꾹질이 나올 정도다. 오히려 크림이라던가 치즈 이런 느끼한 것들을 잘 먹던 나에게, 외국 음식은 그렇게 크게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고 있다. 여러 반찬을 맛볼 수 있는 한국 스타일도 그립고, 매워서 잘 안 먹던 떡볶이도 그립고, 별로 좋아하진 않았던 소주도 그립다. 물론 치맥과 삼겹살, 소고기,, 회,, 시작하면 전부 다나 올 기센데,,ㅋ 블로그를 하면서 맛집 투어나 치맥 같은 게 올라올 때마다 곤혹스럽다ㅎ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엄마 아빠가 기내에서 주는 볶음 고추장을 가져와서 프랑스식 요리 위에 뿌려먹길래, 그렇게까지 매운 게 먹고 싶냐고 했는데,, 어느덧 내 접시 위엔 항상 고추장이 올라와있다 ㅋ 2kg짜리 고추장을 통째로 가져온 엄마에게, 이걸 어떻게 다 먹냐고 어떻게 가져왔냐고 했는데 ㅋㅋ 벌써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ㅋ 이제는 고추장이 없으면 허전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올드해 지는 거라면 할 수 없는거다. 슬프긴해도 나쁜건 아니니까ㅜ (정신승리..ㅠ)

어쨋거나 오늘부터는 김치까지 가세해서, 당분간은 더 행복한 밥상이 될 것 같다 ^^ 빨리 저녁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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