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굿스토리

 

처갓댁에서는 양봉을 하여 꿀을 자급자족합니다. 1년 치가 다 조달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간 채취되는 꿀은 무농약 무공해의 신선한 꿀이라 선물도 하고, 자식들이 집에 들르면 돌아갈 때 가방에 바리바리 싸주기도 합니다. 덕분에 같이 좋은 꿀을 맛볼 수 있었는데, 아내 얘기로는 자기들 어렸을 때부터였다고 하니, 아마도 이곳에 집을 지었던 30여 년 전부터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동안 꿀벌집을 추가하거나, 꿀을 채취하는 것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좀 다른 일인거 같습니다. 뭔 일이냐고 물어보니, 벌들을 옮겨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거길 가야 한답니다. 그러면서 아래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약혐) 

 

대충 만마리 정도 될 거라면서 저걸 옮겨야 된다고 합니다. 순간 평균적으로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다는 통계가 떠올랐으나 한편으론 저걸 어떻게 옮기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따라나섰습니다.

 

 

20여분 정도 달려서 도착해보니, 옆 동네의 어나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근처에는 정말이지 마트도 하나 없고, 농경지와 소,양떼들 뿐입니다.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100년전에도 이와 같았을 것 같은 마을입니다. 이런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아나가고 있는게 신기했습니다. 시골은 이래도 살아지는 모양입니다 ㅎㅎ

 

 

만여 마리의 벌이 있다는 집에 도착을 해서, 장인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벌들이 어디 있나 둘러보는데, 출발 전 사진에서 봤던 것이 불과 몇 걸음 앞에 놓여있어 순간 멈칫~ 했네요 lol

 

 

어느새 보호복과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장인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얘기하면 옆에 있다가 달라는 것 집어주고, 필요할 때 잡고 있어 달랍니다. 알겠다곤 했지만 선뜻 다가가기가 겁이 나네요. ㅎㅎ

 

 

어떻게 그 많은 꿀벌들이 이 안에 다 모이게 끔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 같이 안에서 바글바글 거리고 있었습니다. 바구니(?)가 살짝씩 움직일 때마다 안에서는 웅~ 웅~ 하는 소리와 작은 진동이 느껴집니다. ㅠㅠ 

 

<꿀벌 떼 수거하는 모습>

 

별안간 보자기로 싸고, 또 싸고, 고무 체인으로 묶더니 그걸 살포시 들어서 옮기기 시작합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와서,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집으로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꿀벌 만마리가 보자기에 싸진 채, 트렁크에 실렸습니다. 아니 숲 속에 보내 주거나 하는 게 아니었... 

 

 

앞좌석 시트를 바짝 당겨 앉아 보지만, 꿀벌 만마리와 한차에 타고 있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트렁크 쪽에서 웅~웅~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  불안한 마음에 가는 도중에도 계속 뒤를 주시하게 됩니다. 혹시 끈이 풀린다던가, 보자기에 구멍이라도 생긴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이어질 그다음 장면은 ㅎㅎ 

 

 

마음이 급하니 돌아가는 길이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한 마리가 탈출에 성공하면 어떻게 액션을 할 것인지 계속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을 했네요. ㅎㅎ 누구보다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서 차로 부터 멀찍이 떨어졌습니다. 전혀 쿨하지 못한 나와는 대조적으로, 장인은 트렁크를 열더니 단숨에 보자기를 집어 올립니다.

 

꿀벌 보자기를 이사할 곳에 놓고는 새 집으로 이동시킬 준비를 합니다.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연기통을 준비합니다. 이 연기통이 뭔가 싶지만 이 연기통이 유일한 벌 퇴치 도구이자, 벌을 집 안으로 들여보낼 때 쓰는 양봉계에 있어서는 '머스트해브아이템' 입니다.

 

 

<꿀벌 떼를 새집으로 이동하는 모습>

 

한번 털어서(?) 새집으로 옮겼는데도 아직 바구니 안에는 이렇게 많은 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약혐] 한 마리씩 볼 때는 귀여운데, 모여 있으니 꼭 귀여워 보이지만은 않는 것 같네요;;

 

 

 

몇 차례 더 털어서 바구니 붙은 꿀벌들을 떼어낸 뒤, 우리는 새 벌집의 지붕을 덮고 잠시 관찰했습니다. 새로운 집이 낯선지, 입구를 잘 못 찾고 허둥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한데 귀엽기도 하네요.

 

 

시간이 좀 지나자, 집으로 들어갈 녀석들은 들어가면서 자체적으로 정리가 되가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입구를 찾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나아지겠죠? ㅎㅎ

 

 

이렇게 해서 꿀벌 만마리와 드라이브 후 새집으로 이사시키는 것 까지 완료 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살면서 처음 해본 거라 나름 재미(?)와 스릴이 있었던 하루 였습니다. 일이 끝나자 꾸물 거렸던 날씨도 맑아지며 무지개를 선물해 줍니다. 강제 이사한 꿀벌들이 더 안락한 새 집에 잘 적응해서, 앞으로 더 많은 꿀을 모아주길 기대해봅니다. 오늘도 무사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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