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를 무사히 탈출한 기쁨도 잠시, 우리가 타고 왔던 비행기의 모든 짐이 다른 터미널로 들어가 버렸고 터미널은 폐쇄되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7시부터 수화물 벨트 근처에 죽치고 앉아 하염없이 짐을 기다렸는데, 짐을 다 챙겨서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바로 차량을 렌트하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다음날 출발하기로 했다. 두두도 배고프고 지쳐서 칭얼대기 시작했는데 호텔에서 다행히 아기용을 포함한 두 끼의 간식거리가 제공되었다. 샤워하고 아기용 Pure를 몇 숟갈 먹더니 두두는 이내 잠이 들었다. 한국의 구호물품에 비할바가 못되지만 그래도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Paris Orly 공항에서 Touluse로 가는 항공편이 캔슬되지 않아, 우린 8시간 운전 대신 1시간 반짜리 국내선을 이용할 수 있었다. 호텔-공항 그리고 Touluse 공항-처가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는데, 요금이 어마어마했지만 회사에서 부담해주기로 돼있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미리 지급받은 마스크를 쓰고 이동했으나, 이 택시에 우리 이전에 누가 탔을지도 모르고 택시기사도 감염자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에 이동하는 내내 불안했다.
현재 프랑스는 모두 강제적으로 집에 머물러야 하며, 생필품을 사러 밖을 나갈 시에는 통행 허가증 지참해야 했다. 허가증 없이 밖에 있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벌금을 내야한다.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으며, 길거리에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차도 없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죽은 도시 같다. 택시 안에서 바라본 바깥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동네가 아니었다.
처가는 툴루즈에서도 1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시골 마을에 위치해있는데, 해가 지기 전 처가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준비해 둔(?) 별채로 바로 이동했다. 평소에 처가에서는 이 별채로 숙소 대여를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아기랑 우리가 쓸 수 있게 처가에서 미리 준비를 해줬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하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두두를 재우고 마스크를 쓴 채로 본채에 가서 처가 식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보르도와 낭트에서 살고 있던 치즈의 여동생과 남동생이 모두 와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무사히 도착했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서 마음이 놓였다. 이제는 우리로 인해 처가 식구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것이 2주간 별채에 머무는 가장 큰 이유였다. 처가 식구들을 만날 때면 늘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했고, 처가 식구들도 두두랑 놀 때는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로 나왔다.
다음 날부터 아내와 나는 바로 재택근무 모드에 들어갔고, 일하는 동안은 처가 식구들이 돌아가며 두두랑 놀아주었다. 처음엔 낯설음과 불안함도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처럼, 우리 식구 모두 어느새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두두가 살찌고 있어 다행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프랑스 자가 격리하는 일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며, 얼마전 마크롱의 말데로 최소한 이대로 5월 11일까지 지내야 할 것 같다. 어제 총선을 치른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같은 시각 여기에서는 일상이다. 어제 우리 나라의 선거는 여기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긴 밖을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데, 우리는 전국 규모의 투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를 전 국민 발열체크의 기회로 삼는다는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속해서 컨트롤해 나가고 있는 한국을 보며, 처가 식구들도 한국 정부와 시민들 모두가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줘서 국뽕에 살짝 취했다.